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탄소중립이나 ESG라는 말을 들으면 '대기업 홍보팀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내용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건 환경부 담당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출하는 기업이라면 지금 당장 데이터를 쌓아야 하는 실질적인 경영 문제였습니다.
CBAM과 스코프 3, 수치가 틀리면 돈이 나간다
제가 처음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접했을 때, 단순히 '수입품에 세금 더 붙이는 제도'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내용을 파고들어 보니 핵심은 세금이 아니라 '데이터'였습니다. 여기서 CBAM이란, EU가 자국 내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해 수입 제품에도 동일한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EU로 제품을 팔려면 그 제품을 만들면서 탄소를 얼마나 배출했는지 증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는 보고 의무 단계로 운영 중이지만, 실제 부담금 징수가 시작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품 하나를 만들면서 발생한 탄소량이 EU 기준을 초과하면, 그 차이만큼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철강처럼 탄소 집약도가 높은 산업은 제조 공정만 바꾼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원료 채취부터 운송, 포장까지 전 과정을 추적해야 합니다. 제가 만약 철강사 담당자라면 지금 당장 가장 먼저 할 일은 설비 교체가 아니라 현재 배출량 현황 파악일 것 같습니다.
이 지점에서 스코프3(Scope 3) 개념이 등장합니다. 탄소배출은 스코프 1(기업 직접 배출), 스코프 2(구매 전력 등 간접 배출), 스코프 3(공급망·물류·소비자 사용 단계 전체 배출)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여기서 스코프 3란 기업이 직접 통제하지 않는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뜻합니다. 즉 내 공장에서 나오는 탄소뿐 아니라, 원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사와 물건을 실어 나르는 물류사에서 발생하는 탄소까지 관리 대상이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건 대기업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대기업이 협력사에 탄소 데이터를 요청하더라도, 협력사가 그걸 측정할 시스템도, 인력도 없다면 숫자 자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데이터 제출하라'는 요구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부 선도 기업들이 협력사 대상 탄소관리 교육과 컨설팅 지원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데, 이게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배경에서 기업이 실질적으로 갖춰야 할 대응 체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코프1·2·3 전 구간 탄소배출 현황 파악 및 데이터 관리 시스템 구축
- 제품별 탄소발자국 산정 및 EU CBAM 보고 체계 정비
- 협력사 대상 탄소 측정 방법 교육 및 저탄소 원료 전환 유도
- 수소환원제철, 스크랩 활용 확대 등 저탄소 공정 전환 중장기 로드맵 수립
탄소 규제를 단순히 '나중에 대응하면 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가 자료를 살펴본 결론은 달랐습니다. 규제가 시행된 뒤에 데이터를 급하게 찾는 것보다, 지금부터 측정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만드는 쪽이 훨씬 현실적인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EU 환경 규제 관련 최신 동향은 출처: 한국거래소 ESG 포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SG 공시, 숫자보다 측정 역량이 먼저다
ESG 공시 의무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보고서 하나 더 만드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공시 항목을 보니 탄소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재생에너지 비중, 폐기물 관리, 용수 사용, 안전보건, 협력사 관리까지 포함됩니다. 이 숫자들을 '정확하게' 뽑아내려면 데이터 관리 체계가 먼저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숫자가 없으면 공시 자체가 불가능하고, 부정확한 숫자를 공시하면 신뢰성이 더 떨어지는 구조입니다.
현재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ESG 공시 의무화가 시작되었으며, 향후 중견·중소기업으로도 확대될 예정입니다(출처: 한국거래소 ESG 포털). 공시 기준으로는 국제 기준인 GRI(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 TCFD(기후 관련 재무 공시 협의체), SASB(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 등을 준용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여기서 TCFD란 기후변화가 기업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공시하도록 권고하는 국제 프레임워크입니다. 즉 환경 지표뿐 아니라 기후 리스크가 기업의 수익과 비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설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숫자를 많이 공개하는 것'과 '제대로 된 숫자를 공개하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었습니다. 형식적으로 보고서를 채우는 기업보다 실제 배출량을 측정하고, 감축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고, 실행 결과를 다시 검증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투자자와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조달 이니셔티브)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여기서 RE100이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자발적 글로벌 이니셔티브입니다. 방향은 명확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녹색 프리미엄(재생에너지 전력에 웃돈을 얹어 구매하는 방식),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Power Purchase Agreement), 자가발전 설비 구축 등 경로가 여러 갈래인데, 기업 규모와 입지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집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초기 투자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공동 구매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 활용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저는 기업의 친환경 활동을 볼 때 '친환경'이라는 문구보다 실제로 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는지, 감축 목표가 연도별로 구체적인지, 데이터가 외부 기관의 검증을 거쳤는지를 먼저 보려고 합니다. 제 경험상 이 세 가지를 갖추지 못한 기업의 ESG 보고서는 읽을수록 신뢰가 떨어집니다. 환경 규제 대응은 결국 시스템의 문제이고,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CBAM이 중소기업에도 영향을 주나요?
A. EU로 직접 수출하는 기업이라면 규모와 상관없이 영향을 받습니다. 현재는 보고 의무 단계이지만, 실제 부담금 징수가 시작되면 제품별 탄소배출량 데이터를 준비하지 못한 기업은 수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직접 수출이 아니더라도 대기업 공급망에 속한 중소 협력사라면 스코프3 관리 차원에서 탄소 데이터 제출 요청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스코프3 관리,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A. 스코프3는 범위가 넓어 처음부터 완벽하게 대응하려다 보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하게 됩니다. 먼저 주요 원자재 공급사와 물류사 등 탄소 배출 비중이 큰 협력사를 우선 파악하고, 해당 업체들과 데이터 수집 방식을 협의하는 것이 현실적인 첫 단계입니다. 모든 협력사에 동일한 요구를 하기보다 규모와 업종에 따라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RE100 참여 안 하면 불이익이 있나요?
A. RE100 자체는 자발적 이니셔티브라 법적 의무는 아닙니다. 다만 글로벌 완성품 제조사나 유통사들이 공급망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사실상 수출 거래 조건이 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습니다. 미참여가 당장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주요 거래처의 공급망 기준이 강화될 경우 장기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Q. ESG 공시, 중소기업도 지금 준비해야 하나요?
A. 현재 의무 공시는 자산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 의무화 대상이 확대될 예정입니다. 데이터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의무 공시 시점이 됐을 때 급하게 준비하면 데이터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에너지 사용량이나 폐기물 발생량 같은 기초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준비가 됩니다.
결론
이번에 글로벌 환경 규제를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바뀐 생각은 '환경 규제는 나중에 준비하면 된다'는 인식을 버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규제가 본격 적용된 뒤에 데이터를 급하게 찾는 것보다, 지금부터 탄소배출 현황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대응입니다.
다만 모든 기업이 같은 속도로 대응할 수 있다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자료를 살펴본 바로는,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업에 대한 요구 수준과 지원책이 함께 확대되어야 실질적인 탄소 감축이 가능합니다. 환경을 지키는 것과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함께 가려면, 규제의 속도와 지원의 속도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계적으로, 측정 가능한 목표부터 시작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