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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있어도 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말, 탄소중립 분야에서 특히 실감하게 됩니다. 그린수소, 탄소포집, 기후테크 스타트업까지 관련 기술은 빠르게 늘고 있는데, 막상 현장에 얼마나 뿌리내리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도 처음엔 이 분야를 거창한 정책 이야기로만 봤는데, 실제 실증 사례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린수소와 탄소포집, 기술보다 '현장 정착'이 진짜 문제다
탄소중립 기술을 처음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게 수전해(Water Electrolysis) 기술이었습니다. 수전해란 물에 전기를 흘려 수소와 산소를 분리하는 공정으로,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쓰면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그린수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론 완벽한 그림인데, 문제는 생산 단가였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제주대학교가 그린수소 상용화를 위한 산학 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제주는 풍력과 태양광 보급률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 재생에너지 기반 수전해 실증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핵심 연구 과제로 잡은 것이 촉매 기술과 스택(Stack) 설계인데, 스택이란 수전해 반응이 실제로 일어나는 핵심 부품 묶음을 말합니다. 스택 효율을 높이면 같은 전력으로 더 많은 수소를 뽑을 수 있으니 단가 절감의 핵심 변수가 됩니다(출처: 한국수력원자력).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산학 협력이라고 하면 대학 실험실 논문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실증 인프라를 공공기관이 직접 제공한다는 구조가 달랐습니다. 대학의 기초 연구와 공공기관의 운영 인프라가 결합되면 기술 개발 주기가 단축되고, 상용화 리스크도 분산됩니다. 기술을 개발한 쪽과 실제로 운영할 쪽이 처음부터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셈입니다.
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은 또 다른 각도에서 흥미로웠습니다. CCUS란 공기 중이나 배출원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붙잡아 저장하거나 산업 원료로 재활용하는 기술 전반을 가리킵니다. 서울 노원구가 전국 최초로 구청사 안에 탄소포집장치를 설치해 운영 중인데,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탄산칼슘 같은 산업 원료로 전환하거나 실내 공기질 개선에 활용하는 방식입니다(출처: 노원구청).
제가 이 사례에서 주목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후설치 가능한 모듈형'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대형 시설에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건물에 끼워 넣을 수 있는 구조여야 확산 속도가 빨라집니다. 아무리 탄소 감축 효과가 크더라도 기존 설비를 전면 교체해야 한다면 도입을 결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 경험상 기술 도입의 가장 현실적인 장벽입니다.
- 수전해 기술: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수소 생산, 촉매·스택 효율이 단가 결정
- CCUS 기술: 이산화탄소 포집 후 탄산칼슘 등 산업 원료로 재활용 가능
- 모듈형 설계: 기존 건물 후설치 가능 여부가 실제 확산 속도의 핵심 변수
- 산학 협력 구조: 연구 역량과 실증 인프라 결합으로 상용화 주기 단축
기후테크 스타트업, 지원금보다 '실증 연결'이 더 현실적인 도움이다
기후테크(Climate Tech)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들여다볼수록 구조적인 아쉬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후테크란 기후변화 대응을 목적으로 탄소 감축, 재생에너지, 순환경제 등의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 생태계를 말합니다. 인천테크노파크가 기후테크 혁신기술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당 최대 4100만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보면서 제가 먼저 든 생각은 "이 돈이 어디까지 가닿느냐"였습니다.
개발비 지원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이 실제로 막히는 지점은 돈이 떨어지는 시점이 아니라, 기술을 시험해볼 실제 현장을 못 찾는 시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에너지공사가 ESG 테스트베드를 운영하며 참여 기업에게 발전소, 배전 인프라, 건물 에너지관리 시스템(BEMS, 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같은 실제 운영 환경을 개방한다는 건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BEMS란 건물 내 전력·냉난방·조명 등의 에너지 흐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최적화하는 통합 관리 시스템입니다. 이런 인프라에서 실증이 가능하다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개발비 지원보다 훨씬 큰 자산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넷제로 챌린지X 프로그램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들을 보면, 특히 탄소배출 측정·관리 플랫폼 분야가 두드러집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공시 의무화 흐름과 맞물려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감축 계획을 수립하는 소프트웨어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는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 스타트업에게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후테크 스타트업 지원 성과를 평가할 때 지원 기업 수만 세는 방식이 아닌, 다른 기준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증에 성공한 기술이 몇 개인지, 그중에서 실제 매출이나 후속 투자로 연결된 게 몇 개인지, 그리고 실제 탄소 감축에 기여한 양이 얼마인지를 추적해야 진짜 성과를 알 수 있습니다. 숫자가 많아 보이는 지원 실적이 오히려 체계적인 평가를 가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인 구조는 '개발 → 공공 실증 → 데이터 공개 → 구매 연결'의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개발한 기업이 공공건물에서 일정 기간 운영하고, 전력 사용량 감소율·유지관리 비용·탄소 감축량을 공개 기준으로 측정합니다. 기준을 충족하면 공공조달로 연결되거나 다른 지자체로 확산됩니다. 이 흐름이 만들어지면 스타트업은 지원금이 아닌 실제 사업 기회를 얻는 것이고, 공공기관도 검증된 기술만 도입하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그린수소가 일반 수소랑 어떻게 다른가요?
A.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수소 대부분은 천연가스를 고온으로 분해해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반면 그린수소는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으로 수전해 공정을 돌려 생산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이 없습니다. 지금은 생산 단가가 높은 게 가장 큰 과제이고, 촉매와 스택 기술 개선이 핵심 변수로 꼽힙니다.
Q. 탄소포집 기술을 일반 건물에도 설치할 수 있나요?
A. 서울 노원구 청사 사례처럼 모듈형으로 설계된 탄소포집 장치는 기존 건물에 후설치가 가능합니다. 다만 설치비용, 포집한 이산화탄소의 처리 방법, 유지관리 비용이 경제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 도입 전에 이 세 가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공공건물 실증 데이터가 쌓일수록 민간 상업시설로의 확산 판단도 쉬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Q. 기후테크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인천테크노파크의 기후테크 혁신기술 사업화 지원이나 서울에너지공사 ESG 테스트베드처럼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프로그램은 각 기관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 공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원 요건과 모집 시기가 매년 다르므로 정기적으로 공고를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테스트베드 참여 기회는 단순 지원금보다 실증 경험과 시장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사업화에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됩니다.
Q. 탄소중립 기술을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게 뭔가요?
A. 기술의 혁신성보다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금으로 설치 비용을 충당할 수 있지만, 지원이 끝난 뒤 유지관리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결국 멈추게 됩니다. 실제 탄소 감축량, 초기 설치 비용, 유지관리 비용, 기존 설비와의 호환성 네 가지를 공개 데이터로 비교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결론
탄소중립 기술을 살펴볼수록 드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많이 만드는 것에서 검증된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린수소, CCUS, 기후테크 스타트업 모두 기술 자체보다 현장에 뿌리내리는 속도가 탄소중립의 실제 속도를 결정하게 됩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단순합니다. 작은 현장에서 먼저 시험하고, 비용과 탄소 감축 데이터를 공개 기준으로 측정하고, 효과가 확인되면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실증 결과를 표준화해서 누구나 비교할 수 있게 공개하는 것, 그게 탄소중립 기술 확산의 가장 조용하지만 강력한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