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에 경기장을 찾았다가 스탠드 끝에 홀로 앉아 있는 엄마를 봤습니다. 아이가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엄마는 박수를 쳤습니다. 웃는 얼굴로. 제 누나도 꼭 그런 표정을 짓습니다. 조카가 야구를 시작한 지 몇 년째, 저는 그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것이 쌓여 있는지 가까이에서 보게 됐습니다. 야구 학부모의 삶은 경기장 조명 바깥,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진짜 모습을 드러냅니다.경제적 부담: 야구가 '귀족 스포츠'로 불리는 이유조카가 엘리트 야구팀에 처음 들어갔을 때, 누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장비 목록을 받아 가격을 검색하는 것이었습니다. 글러브, 배트, 스파이크, 배팅 헬멧, 배팅 장갑. 항목 하나하나를 더하다 보니 입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함께 계산해 봤더니, 기본 장..
저도 처음엔 투수의 실력을 구속으로만 판단했습니다. 150km 넘는 강속구로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가 최고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렉 매덕스의 커리어를 하나씩 찾아보면서 그 기준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압도적인 힘이 아니라 정교한 제구력과 끝없는 자기혁신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긴 투수. 그의 이야기는 야구장 밖에서도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듭니다.제구력이라는 무기 —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방식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매덕스가 드래프트 당시 많은 구단에서 외면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입니다. 1966년생인 그는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 평균 신장인 190cm에 한참 못 미치는 180cm 초반의 체격이었고,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운동선수답지 않은 외모"라는 혹평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
가장 힘든 순간에 감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 말이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그런데 루게릭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130경기 연속 출장, 불치병 선고, 그리고 "저는 지구상에서 가장 운 좋은 남자입니다"라는 말. 기록보다 태도가 더 오래 남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베이브 루스의 그늘에서 뿌리를 내린 사람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대부분 루게릭을 기록으로 먼저 접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작 루게릭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의 전성기보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뛰었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루 게릭(Lou Gehrig)은 1903년 뉴욕의 가난한 독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몸이 불편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조건이 갖춰지길 기다리다 결국 아무것도 못 한 경험, 저도 꽤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행크 에런(Hank Aaron)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오래 걸렸습니다. 장비도, 조명도, 변변한 연습 공간도 없었던 소년이 결국 메이저리그(Major League Baseball, MLB) 역사를 통째로 다시 썼다는 사실이 단순한 스포츠 성공담으로 읽히지 않았습니다.나무 막대기에서 시작된 타격 — 결핍이 만들어낸 유년기1934년 앨라배마주,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행크 에런에게 정식 야구 장비는 사치였습니다. 그는 나무 막대기를 깎아 배트를 만들고 길에서 주운 병뚜껑을 공 삼아 스윙을 반복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696개의 홈런과 3,115개의 안타. 이 숫자만 보면 단연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완벽한 타자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찬란한 숫자 뒤에 약물 스캔들과 동료 배신이라는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재능 하나는 역대 최고급이었던 선수가 왜 명예의 전당 문앞에서 멈춰야 했는지, 그 선택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슈퍼스타의 탄생, 그리고 텍사스의 거대한 계약1993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만 18세에 프로 무대를 밟고, 불과 2년 만에 마이너리그를 졸업한 유격수. 제가 처음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눈여겨봤을 때의 첫인상은 솔직히 '만화 캐릭터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유격수라는 포지션은 발이 빠르고 수비가 좋은 대..
솔직히 처음엔 그냥 잘 치는 1루수 정도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거듭해서 보다 보니, 기록보다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프레디 프리먼(Freddie Freeman)이 제 인생 선수가 된 건 그 순간부터였습니다. 타율이나 홈런 개수보다, 실패한 타석 다음에 어떤 얼굴로 다시 들어서는지를 보게 되는 선수.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제가 직접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한 글입니다.프레디 프리먼과의 첫 만남, 그리고 달라진 시선제가 프리먼을 처음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그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 잡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타격 기술 자체에 끌렸습니다. 이른바 스프레이 히팅(Spray Hitting)이라고 불리는 방식인데, 이는 당겨 치기에 의존하지 않고 반대 방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