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다가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첫째는 공을 잡으면 무조건 골대를 향해 달려가고, 둘째는 공을 아빠 손에 올려주는 것만으로 배를 잡고 웃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스티브 내쉬를 생각했습니다. 농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꼭 골을 넣는 순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두 아이와 함께 놀다 비로소 몸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편견을 뚫고 코트에 선 선수스티브 내쉬는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랐습니다. 축구 선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하키가 더 익숙했고, 농구를 처음 잡은 건 13살이 되어서였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경기를 보고 경로를 바꿨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제가 직접 당시 인터뷰 영상을 찾아봤는데, 그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NBA 역사상 7년 연속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선수는 단 한 명, 데니스 로드맨뿐입니다. 어릴 때 처음 그의 경기 영상을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려한 머리 색깔과 타투 뒤에 그렇게 치열한 농구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 그 장면들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리바운드 왕이 되기까지 — 늦은 출발과 집요한 준비로드맨은 1961년 뉴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났고, 청소년기에는 어머니 집에서도 쫓겨나 노숙 생활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키가 170cm도 되지 않았으니, 당시 그를 NBA 선수로 점찍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그런데 졸업 이후 1년 사이에 키가 20cm 이상 자랐습니다. 이 성장을 계기로 늦게 농구를 시작한..
2014년 NBA 드래프트 당일, 니콜라 요키치의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 중계 화면에는 타코 광고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2라운드 41순위. 그게 세상이 그에게 붙인 첫 번째 숫자였습니다. 저는 그 일화를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좀 씁쓸했습니다. 그런데 그 씁쓸함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요키치가 MVP 트로피를 세 번 들어 올리는 걸 직접 지켜봤으니까요.드래프트 역사 — 숫자가 만들어낸 기대와 편견제가 처음 NBA 드래프트를 챙겨보기 시작했을 때는 지명 순번이 곧 선수의 급수라고 생각했습니다. 1순위는 당연히 리그 최고의 유망주, 30순위 이하는 기대치가 낮은 선수. 그 공식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그런데 드래프트 역사를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그 공식이 얼마나 자주 빗나가는지 알게 됐습니다. NBA 드래..
수비수가 바로 앞에 있는데 왜 막을 수가 없을까요. 처음 카이리 어빙의 드리블을 TV로 봤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것이었습니다. 공이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사라지고, 어느 순간 몸 뒤로 넘어갔다가 다시 손에 들어오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드리블 기술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붙잡아 놓을 수 있다는 것, 2016 파이널에서 클러치 능력으로 역사를 바꾼 순간까지,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풀어봅니다.드리블 기술 — 수비수가 알아도 막지 못하는 이유사람들은 흔히 드리블을 잘하는 선수를 두고 "손이 빠르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어빙을 오래 보다 보면 그 말이 절반만 맞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의 드리블이 특별한 이유는 속도가 아니라 타이밍, 즉 수비수의 무게 중심이 흔들리는 정확한 그..
NBA 경기를 처음 제대로 챙겨 보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183cm라는 숫자가 그렇게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화면 속 아이버슨이 2m가 넘는 선수들 사이를 파고드는 장면을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작은 선수가 잘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조건을 무기로 바꾸는 방식이 달랐던 겁니다.가난과 시련 속에서 코트로 돌아오기까지제가 아이버슨의 성장 과정을 찾아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이 NBA에 데뷔한 게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1975년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없이,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어머니 앤 아이버슨의 손에 자랐습니다.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이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고가의 농구화를 사줬다고 합니다. 제..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한동안 준비한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꽤 오래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때 다시 꺼내 든 이야기가 스테픈 커리의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화려한 NBA 스타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시절의 커리. 그 이야기가 지금의 제 상황에 생각보다 훨씬 정확하게 맞닿아 있었습니다.편견이라는 벽 앞에서 제가 배운 것커리의 고등학교 시절 신체 스펙은 168cm에 56kg이었습니다. 농구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조건이었죠. 명문 대학들은 그를 외면했고, 스카우터들의 평가서에는 늘 같은 말이 반복됐습니다. "재능은 있으나 NBA 레벨의 피지컬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저는 이 대목에서 멈칫했습니다. 제가 최근 준비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나오기도 ..